김애란의 세번째 소설집 '비행운'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읽는 내내 뜨거운 침을 삼켜야했고, 작가의 시선과 통찰력, 그리고 그 아프고도 아름다운 문장력에 연신 감탄했다. 왜 난 아픈 소설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가. _ 작년에는 정말 많은 옷을 샀다. 계절별로, 유행 따라, 기분대로. 그만한 경제력이 있었고 새삼 예쁘게 입는 즐거움을 발견해서였다. 옷 사면 사람 만나야 하고, 사람 만나면 술 마셔야 되고, 술 마시면 실수하고, 실수하면 후회하게 되리란걸 알았지만. 그런 패턴조차 내가 사회적인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p10 여름옷은 기대만큼 예쁘지 않았다. 보자마자 모두 흥분해서 산 것인데 이상했다. 유행은 왜 금방 낡아버리는지. 약간의 시간..
보이A ※스포있음 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의 연령대가 많이 낮아졌다 그 아이들의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과연 그 아이들의 순수함은 누가 더렵힌 걸까 때묻지 않은 도화지에 검은 얼룩을 지게한 건 과연 아이 자기 자신일까 악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악의 영향을 받고 선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선의 영향을 받는 피동적일 수밖에 아이들 결과만 따져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너무나 비뚤어져버린 근본적 문제 범죄 후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미래를 나아가기위해 과거를 버리고 자기자신을 숨긴 소년 과연 그 범죄의 얼룩이 세상속에서 감춰질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변심 혹은 선입관에 의해 어떻게보면 또 다른 피해자가 된 보이A 그들 모두가 그 소년을 '보이A' 또는 '잭'으로만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고 무겁기..
믿고 읽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특유의 해학과 풍자로 유쾌함을 선사했던 작가가 쓰는 범죄스릴러물은 과연 어떨까 쑥쑥 읽혀지지만 전혀 가볍거나 웃기지 않은 이야기 다양한 시각과 상황에서 그려지는 이토이 미유키는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은 아니지만 육감적인 몸매와 넘치는 색기로 숱한 남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전형적인 팜므파탈 때로는 정의의 사도처럼 소신있기도 소름끼치는 살인용의자이기도 번듯한 여성사업가이기도 끝엔 남들과 달리 출세한 우상이기도 그녀의 소문은 끝이 없었고 결국 결말없이 증발해버렸다 넘어가는 책장만큼 끊임없이 그녀를 쫓았고 남은 건 많은 사람들의 부도덕 뿐 - 웃기진 않지만 재미는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자와 이를 묵인한 자 중 과연 어느쪽이 더 나쁜가? 읽는 내내 너무 충격적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함을 문자 그대로 마주했을 당시엔 머릿 속에 그려지는 충격의 장면들 때문에 그 아픔을 가라앉히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실화를 소재로 풀어쓴 소설이라서 실제 주인공인 '실비아'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악의 심연.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감정이기에 그 누구도 속을 알 수 없지만 데이비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다들 나에게 정상이 아니라고 삿대질할까 그는 그 아찔한 상황들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챘고 위험을 감지했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호기심이 그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결말이..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의 실화. 너무나 담담해서 더욱 공포스러웠던 글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이 아닌 수용자들의 인간성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변질되어지며 잃어지는지를 너무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차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랄한...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끔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모두들 그 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빵 한 조각을 더 남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내 숟가락 도둑맞지 않을 수 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얼마나 강한 존재이며 얼마나 유약한 존재일까. 상황과 너무나 대조되는 차분하고 담담한 서술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청춘의 해리엇과 데이비드. 그들은 직장파티에서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을 하게 된다. 현대의 다른 부부들과는 달리 해리엇 부부는 많은 아이들과 큰 집에서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며 큰 집을 마련해 곧 임신에 이른다. 족히 5명 이상의 자식계획을 세운 해리엇 부부를 지켜보는 그들의 가족들은 터무니없이 크기만한 호텔같은 집을 보며 걱정을 하게 되고, 아이가 하나둘 씩 늘어가면서 현실에 부딪힐 미래에 대해 근심하게 되지만 기념일이나 휴가때마다 모여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축제같은 가족들에 만족하기 시작한다. 궁핍해져 가는 생활 속에서 넷째 아이인 사랑스러운 폴이 탄생하고 머잖아 원치 않는 다섯번째 임신을 하게 된 해리엇 하지만 그 아이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해리엇은 출산을 결심하게 되..
풍자가 넘치면서도 시니컬한 역시 조지 오웰 _ 마치 미래에 다녀온 마냥 통찰력 있는 시각에 놀랍다. 역시,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었을 때 아름다운 걸까 거품같은 꿈의 과거는 너무나 찬란하기만 한데 과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찬란했던 꿈마저 사그러드는걸까 전쟁이 바꿔놓은 미래가 된 현실 결국 과거는 환상에 잠겨버렸고 조지 볼링의 숨쉴 곳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는 현재의 우리들의 이야기와 똑같다. 숨쉴 곳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도 잘 그려놓았는지 읽는내내 씁쓸했고, 낚시를 마음에 미뤄둔 조지볼링이 내내 야속했다. 자, 지금이다. 미루지말자. 나를 들뜨게 하는 그 모든 일들을 _ 숨쉬러 나가자 _ 나는 이제 분명히 알아버렸다. 오랫동안 로어빈필드는 내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동할 때 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장르문학소설이라 대부분이 어둡거나 우울한 내용이 많은데 정말 간만에 마음 따뜻한 책을 읽은 것 같다 가까스로 판타지 정도 책을 읽으면서 오쿠다 히데오의 궁중그네가 떠올랐달까 가벼운 듯 가볍지 않고 도톰한 두께감에도 단숨에 읽어내리게 만드는 스토리 신랄하지만 따뜻하고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깊이있는 고민상담소 나미야 잡화점과 같은 고민상담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무맹랑한 어떤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들어줄 곳이라면 매일 밤 우편함을 서성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답을 구하기 위해 고민상담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답을 가진채로 상담을 필요로 한다. 나는 한 차례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있던가 이성적인 판단이랍시고 옳고 그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