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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즐거움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오후의하루 2022. 3. 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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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든다. 점점 빠져들어버린다.

 

소설 속으로. 그리고 모래 속으로-

 

 
목을 칼칼하게 잠겨오는 덧없는 모래의 알갱이들 속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면서도
끝까지 페이지 넘김을 놓치지 않게 된다.

푹푹 빠지는 종아리도 느껴보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모래의 소용돌이 속에 온 몸을 맡기며

썩어들어가는 피부결도 느껴보고, 햇볕 하나 들지 않은 어두운 구멍 속에서 세상 밖 환한 풍경 마저 상상해 본다.

 
나를 찾고 있을거라 굳게 믿었던 소용돌이 같았던 세상과 단절된 채 바깥세상만을 염원하지만,

이미 이 곳은 내 세상이 되어버리고 바깥은 그저 '바깥'세상이 되어 버린다.

바깥으로 나가버리면 그 곳 또한 이미 내 세상이지만 쉽사리 나갈 수 없는 한 그 곳은 이미 내게 있어 '바깥'인 것이다.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존재는 이미 바깥에서 소멸된 지 오래.

 

그는 소멸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는 증명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점점 존재가 확실해지는 구덩이 안 모래집안에서의 생활에 모래처럼 스며들어가 버린다.

 

날개가 꺾여버린 새 처럼 이미 모래 속에 동화되어버린 자신은 끈덕진 모래의 근성을 느끼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대항하고 맞서면 맞설수록 주체할 수 없는 모래의 근성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억압하고 또 억압한다.

 

서서히 굴복하고 체념할 때까지.

 

금새 쌓여버리는 모래를 퍼나르고 또 퍼날라야만 배급받을 수 있는 물.

마음까지 갈증나버린 시간에 다다를 즈음이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물을 위해 일하고, 어느새 모래를 위해 일하는...

 

그리고
모래가 되어버린 여자- 모래로 생명력을 얻는 여자.

 

 

 

굉장한 흡입력에 감탄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쌉쌀한 갈증에 읽어내려갈 수록 식은땀이 일어 이리도 불편할 수가 없다.

 
존재가 사라진 바깥과 존재를 드러낸 모래구덩이 안
어느 새 그의 바깥과 안은 뒤바뀌어버린다.

 

바깥과 안의 뫼비우스같은 굴레 속에서 그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끈질기게 대항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굴복해짐을 느낀다.
목표와 꿈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음을.

 

이겨낼 수 있음을.

 

 
라디오를 샀고 물을 발견했으며, 아이를 가졌고- 사다리는 내려졌다.
탈출의 시간은 조금 더 미뤄도 괜찮다.
이미 그는 그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바깥에서 단 2장의 서류로 사라진 그의 존재가. 

 

 

 

누군가 그를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평한 적이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한번 비튼 종이 테이프의 양끝을 둥그렇게 붙인 것으로, 안과 밖이 없는 공간을 뜻한다.

교조활동과 사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정도의 뜻으로 한 말일까?

비아냥과 더불어 다소 칭찬의 마음도 담겨 있따고 여겨진다.

그야말로 뫼비우스의 띠로군,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뫼비우스의 띠다.

그 좋은 반면만 가지고도 경의를 표할 충분한 가치는 있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수 있는 공백이다.

도주 수단은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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